최근 합신 이대위의 임원 가운데 한 사람이 미국에서 운영하는 인터넷에 게재된 교단 소속도 불분명한 정이철 목사의 글(http://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322)에 대하여 무분별하게 총대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최소한 공(公)교단의 이대위로서는 해야 할 일이 아니다. 혹시 그 글의 배후가 자신들이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글의 내용은 지금까지 합신 이대위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으며 어떤 새로운 주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합신 이대위의 행태를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들의 눈에 들어 있는 들보는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들보를 지적해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을 공격하려는 일에만 집중을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용기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것인 아름다운 신앙인의 인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합신 이대위는 이런 아름다움이 없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사고만치는 합신 이대위

지난 5월 18일 두날개 관련 비합법적인 공청회의 개최는 총회의 권위와 질서를 무너뜨린 공청회로서 이대위원들이 비판받아 마땅한 일을 자행했으므로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자중했어야 한다.

또한 공청회에서 인용한 책자나 자료화면과 다르게 강의한 것은 교단의 부끄러움을 한국교회에 앞에 드러낸 교단의 위해(危害)활동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겸손히 사과해야 한다. 자신의 강의에 활용할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강의함으로 강력한 비난을 받았고 교단이 부끄러움을 당했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이단성을 말하는 사람이 스스로 이단성이 있는 발언을 했다는 것은 공(公)교단 이대위로서는 더 이상 망신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에 대한 해명은 하지 않고 엉뚱한 변명과 읍소만 하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울러 개혁신보 제702호에 광고의 내용과 박형택목사의 기고문으로 공개된 문건에 대한 표절시비에 대해서도 해명이 있어야 한다(http://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314). 신문 광고의 마지막 부분에 “김성곤 목사의 반론에 대하여 우리 교단의 목회자들이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라는 부분이 나온다. 이 광고의 최고의 목적을 밝힌 것이다. 박형택 목사도 “김성곤 목사의 반론에 대하여 우리 교단의 목회자들이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필자는 이 글을 쓴 것이다”라고 글을 맺었다. 도대체 누가 원본인지 밝혀야 한다. 광고에는 교단 이대위의 이름으로 광고를 했다. 그렇다면 개인이 운영하는 ‘바른믿음’이라는 사이트에도 교단 이대위의 이름으로 게재했어야 한다. 표절시비는 기독교인의 양심에 반하는 것이며, 목회자로서는 설교표절도 문제를 삼고 있는 최근의 여론에 비추어 볼 때 전혀 지혜롭지 못한 행위이다. 누가 표절을 한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의 합신 교단의 총회 총대, 총회의 이대위 위원들로서 이런 행위는 올바르지 못한 행위이다.

이처럼 합신의 이대위는 너무나 변칙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입장만 주장하지 반성할 기미가 없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이철목사가 게재한 “김성곤 목사의 두날개는 중단되어야 합니다.”라는 내용을 퍼 나르는 일에 열심을 내는 모습도 공교단 이대위로서는 합당하지 않은 행위이며 교단의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길이 없다. 그야말로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신고자와 검사와 판사가 한 사람이라면…?

정이철목사의 글에서 “2013년 9월에 예장 합신의 충남노회가 제98회 총회에 ‘두날개의 이단성’을 조사하여 달라고 요청함으로 한국 교회에서 두날개 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했습니다.”라는 주장으로 글을 시작하였다.

사실 이 문제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판도라 상자였다. 왜 이들은 판도라 상자를 자꾸 열어서 자멸을 초래하는지 의문이 든다. 합신 총회는 충남노회의 헌의에 대하여 철저한 조사와 규명을 해야 한다. 누가 이런 헌의를 하였는지를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왜냐하면 충남노회에는 이대위의 임원 중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대위 임원이 이 문제를 헌의했다면 이것은 헌의자체가 철회되어야 할 정도의 비윤리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고 합신의 설립정신과 배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대위 임원으로 있는 유OO목사가 ‘두날개에 대한 이단성에 대한 조사 청원’을 했다면「신고자=조사하는 검사=판단하는 판사=이대위 임원」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더욱이 유OO목사는 공청회의 사회를 보면서 지나친 발언을 했는데 결국은 자신이 청원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자신 있게 주장을 했던 것이다. 내가 신고하고 내가 조사하고 내가 판단하는 헌의안은 총회를 우롱하는 것이며 그 헌의안의 공정성과 정당성은 함몰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태는 아주 저급한 사이비 집단의 수법이다.

왜 이렇게 좌충우돌하면서 자꾸만 문제를 키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제 합신 총회는 이 부분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하여 사실 여부를 밝히는 과제가 새로 주어졌다. 「신고자와 검사와 판사가 동일인물」이 막연한 추측인지 Fact(사실)인지를 한국교회 앞에 밝혀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합신 총회가 이단을 규명할 때에 어떤 노회의 누가 헌의를 어떤 근거에서 했으며 어떻게 조사처리 되었는지도 한국교회 앞에 명명백백히 밝혀야 할 것이다.

 

비합법적인 공청회에 대한 이해의 부족

또한 정이철목사의 글에서 마치 이대위의 공청회가 총회의 결의에 의한 공청회인 것처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이다. 총회의 질서와 권위를 무너뜨린 공청회를 한 이대위의 인물이 이런 글을 퍼 나르는 것은 다시한번 총회의 권위에 심각하게 도전하는 것에 불과하다. 합신 총회는 이런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정이철목사의 주장은 공평하지 못한 편협한 자료와 의견을 근거로 주장을 하고 있다. ‘두날개 네트워크 전국목회자 협의회’의 주관으로 개최한 설명회가 끝난 다음에 게재(9월 13일)하였다면 최소한 두날개의 주장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난 다음에 비판을 해도 하는 것이 언론을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단지 어떤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흘려 들은 정보를 가지고 평하는 것은 기본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연구와 비편의 기본도 지키지 않은 주장을 퍼 나르는 것은 이대위 위원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부끄러움이다.

 

합신 이대위의 갑(甲)질을 되풀이 하는 주장

정이철목사가 주장하는 주장은 곰곰이 살펴보면 모든 내용이 합신 이대위가 주장하고 싶은 내용을 되풀이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성곤 목사는 기독교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는 대목에서 “두날개에 대한 문제가 지적되면 고쳤고, 고치는 중이고, 고칠 것이다. 그런대 굳이 나를 이단이라고 못을 쳐야 속이 시원하겠는가? 목숨이 오고 가는 전쟁터에서도 적이 백기를 들고 항복하면 총을 쏘지 않는 법인데, 사랑이 넘쳐야 할 기독교 교계에서 이렇게 몰인정하게 해야만 하는가?”라는 주장을 한다.

이것이 자질의 문제라면 이런 내용이 되는 것이다. “합신 이대위가 공청회에 나오라고 하면 무조건 나가고 합신 이대위가 잘못이라고 지적하면 그렇다고 인정하고 해야 목회자의 자질이 있다”는 전형적인 갑(甲)질의 악행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지속적인 모함과 참소

정이철목사의 주장 가운데 “김성곤 목사에게는 신사도 운동 성향의 이단성이 농후하다”는 주장을 6가지 정도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 역시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허위 사실을 적시하면서 글을 전개하고 있다.

정이철목사는 ‘미국의 어떤 목회자의 간증’을 대단히 중요한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겉으로 보여준 단편을 가지고 전체를 오해한 결과에 불과하다. 그 간증자는 두날개만 경험한 목회자가 아니라 IHOP(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이하 아이합)을 수용한 어느 미국의 한인교회 목사의 간증이다. 그래서 그는 ‘아이합’의 체험을 중심으로 간증을 한 것으로 사료된다. 이런 사례를 가지고 “김성곤 목사는 신사도 운동의 ‘성령의 기름부음’이라는 요설을 가르쳤습니다. 거짓 영의 역사의 도구가 되었던 사람입니다”라는 정이철목사의 주장은 심각한 논리적 오류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정이철목사는 자신의 글에서 ‘김성곤목사의 안수’에 대하여 명확히 밝혀 놓았다.

“저도 안수를 한다. 그러나 쓰러지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성향에 따라 쓰러지는 사람들이 있다. 목회자들과 집중훈련할 때 보면 오순절파 목사님들도 오고, G12했던 분들도 오고, 신사도운동 했던 분들도 온다. 초교파 사역을 하기 때문에 다양한 분들이 오시는데, 이 분들은 안수만 했다하면 쓰러지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오해를 받은 것 같기도 하다. 저는 결코 사람들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안수해 본 적이 없다. 디모데후서 1장 6절 말씀처럼 바울이 디모데 안에 은사가 불 일 듯이 일어나게 하고자 안수를 한 것이지 쓰러뜨리기 위해 안수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김성곤목사에 대하여 “신사도 운동가들에게서 배운 ‘임파테이션’(imparttation) 주술을 두날개 프로그램을 통해 수없이 시행하였습니다.”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자기오류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용한 딤후 1:6을 김성곤목사의 생각과 달리 자신의 생각으로 상대방을 모함하는 행위는 목회자로서 할 일이 아니다. 또한 싱가폴에서 신사도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했다고 해서 그가 신사도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형태의 주장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주장이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불신자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교제할 수 있다. 불교의 승려들도 만나서 교제할 수 있고 그들의 주장을 경청할 수 있다. 이것이 개혁주의 관점에서 볼 때에 개종인가? 타락인가? 사상의 혼합인가? 종교 혼합주의에 속하는가? 아니다. 그렇게 보는 것은 개혁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편협한 사고의 결과이다. 김성곤목사는 이 사건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한다.

“아주 오래전 싱가폴에서 열린 세미나에 많은 목사님들과 같이 참석한 적은 있습니다. 당시는 이단성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때였습니다. 더구나 세미나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강의를 듣고 분별했습니다. 이것은 신학적, 정서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도리어 강의 때마다 주의할 것을 말했습니다.”

이런 주장을 들어보지도 않고 매도하는 참소하는 행위는 신앙적인 행위가 아니다. 정이철목사의 글을 되풀이해서 읽게 되면 김성곤목사의 주장이 문제가 아니라 정이철목사의 글이 전반적으로 일관성이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정이철목사가 인용한 김성곤목사의 말들은 결코 ‘성령을 조정하거나 임파테이션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날개를 모른 채 끊임없는 비방과 모함

정이철목사는 결정적인 자기 오류를 하나 더 가지고 있다. 두 날개를 경험하지 않아서 잘 모른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이철목사의 글에 동조한 54명 가운데 두날개를 경험한 사람은 단 1명에 불과하다. 조경윤목사이다. 그는 두날개양육시스템 자체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발전적인 대안을 연구하면서 문제를 지적하였으며, 미국교회의 목회자들이 무조건적으로 신봉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을 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 다른 여러 문제 때문에 섬기는 교회의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두날개가 담임목사의 위상을 강화시키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며 재차 미국 뉴스앤조이에 인터뷰하였고 이번 합신 이대위의 ‘두날개는 목사교를 만든다’는 주장에 이용된 것이다.

두날개를 비판하려면 그 내용을 충분히 경험하고 연구하고 비판해도 늦지 않다. 조경윤 목사의 글에 대한 실명의 댓글이 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H교회에서 몇 개월만에 250명의 성도들이 교회를 떠난것은 성도들이 두 날개 시스템에 지치고 기대했던 열매들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필자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H교회에서 나온 많은 사람들이 두날개 시스템 때문에 지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담임목사님이 두날개 시스템을 악용하면서 그릇된 물질관과 이중적 태도 등의 비인격적인 처사들을 했기에 그 교회를 떠났다고 말씀하신 것이 더 정확하겠습니다(이OO).”

위의 자료는 미국에서 쉽게 알 수 있는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정이철목사는 ‘두날개가 담임목사교를 만든다’는 허위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에 김성곤목사가 정말로 담임목사교를 만들려고 했다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의 장로를 세우려면 15~20년은 교회에 출석하며 시간의 검증을 통과한 교인이어야 한다는 것이 어르신들의 조언이었습니다. 풍성한교회는 94년에 개척한 교회입니다. 장로 임직의 기준을 세웠고, 이 기준을 충족하는 장로를 세운 것이 2009년 입니다. 15년이 소요되었지만, 이 장로님의 나이는 불과 50세 초반이었습니다. 그래서 2009년 이전에는 공동의회, 제직회는 있지만 당회는 조직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목회에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본인이 개척한 교회에서 15년이라는 기간을 교회의 성도들을 훈련시키며 일꾼으로 세우면서 자신은 임시목사로 지낸 김성곤 목사가 ‘목사교’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하는 것이 상식적인지 독자들이 판단할 문제이다.

 

스스로 이단의 주장을 하고도 해명을 하지 않는 합신 이대위

정이철목사가 이번 공청회에 대한 설명회 소식을 듣고 변호하는 글을 작성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의사이다. 좌우를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고 글을 써야 한다. 공청회에서 ‘메시야 과정설’, ‘삼위일체 삼신론’의 주장을 펼치고도 정당한 해명이 없는 일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세계한인기독교이단대책연합회(세이연)’에 소속한 목회자가 이런 주장을 펼쳤다면 ‘세이연’에서도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입장 표명이 없다. 또한 ‘기독교이단대책협회’의 대표회장으로 취임한 분이 이런 이단을 주장하는 분이라면 이 일에 대해서도 공정하게 언급을 해야 정이철목사 다운 글이 될 것이다.

정이철목사는 합신이대위의 공청회에서 나온 ‘메시야과정설’과 ‘삼신론’의 주장이 얼마나 위험한 주장인지 인지를 못하고 오직 두날개의 비판에만 눈에 불을 켜고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특히 메시야 과정설에서 ‘메시야로서의 과정’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이 역시 대단히 위험한 주장이며,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구분’된다는 주장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주장이다. 왜 침묵하는가?

 

판도라의 상자는 쳐다보는 것도 위험

사실 이 일은 쉽게 끝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합신이대위와 두날개 측이 만난 2차례 만남에서 안OO 이대위원장의 기고문처럼 ‘위원회의 연구 결과를 통지’하고 상호합의하에 공청회를 했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두날개측은 연구결과를 요청하면서 공청회에 대한 부담감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합신 이대위는 판도라의 상자를 던졌다. 전형적인 갑(甲)질이었다. “무조건 공청회에 나와라”는 주장은 두날개를 판도라의 상자에 넣어서 봉인하고 자신들이 주장하고 싶었던 내용을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두날개는 처음부터 화해의 손을 내밀었고, 공청회 이후에도 공청회를 분석한 자료를 통하여 그 자료를 공개하기 이전에 화해의 손을 내 밀었다. 그러나 뿌리친 정도가 아니라 내밀었던 손이 부끄러움을 넘어서 아픔으로 돌아온 결과가 되었다. 또한 공청회에 대한 설명회에도 초대하였지만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합신 이대위는 ‘김성곤목사의 반론에 대한 답변의 표절사건’‘정이철 목사의 글을 퍼 나르는 행위’ 등을 통해서 자꾸만 판도라의 상자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자중해야 할 때에는 자중해야 한다. 좌충우돌도 유분수이다. 모든 일의 잘못된 원인을 제공한 합신 이대위는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몇 해 전에 ‘합신 이대위의 OOO목사에 대한 학력위조에 관한 언론보도’가 있었다. 처음에는 기자가 약식판결로 벌금형을 선고 받았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기자에 대한 혐의 없음으로 끝이 났다. 그렇다면 그 당사자는 자신의 학력에 대하여 명확한 해명이 있어야 하지만 그냥 넘어갔다.

이제 합신 총회는 학력위조에 관한 논란이 있는 위인에 관하여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학사학위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득한 것이 아니라면 그 이상의 학력도 취소되어야 할 것이며, 그 학력으로 얻어진 모든 직위도 취소되는 것이 상식적이며 합당한 처사일 것이다. 합신 총회는 이것이 사실인지 여부에 관하여 누가 보아도 이해가 될 수 있도록 확실하게 규명하여 한국교회 앞에 밝혀줄 임무를 또 하나 맡은 것이다.

 

초교파운동, 개혁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복음주의적 관점으로 평가

합신 이대위나 정이철목사의 심각한 오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성곤 목사의 사역은 초교파 사역이다. 그런데 초교파 사역을 ‘개혁주의’의 잣대로 비추어서 이단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오히려 ‘복음주의의 잣대’로 분석해야 한다. 만일 개혁주의의 잣대로 분석하면 대한민국에 개혁주의가 아니면 다 이단성이 있는 교회들이 된다. 실제로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않는 교단이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이단성이 있는 교단’이라고 할 것인가?

합신과 같은 교단의 근본주의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편협한 근본주의나 왜곡된 근본주의는 성경의 자의적 해석을 하는 오류를 항상 범할 수 있게 된다.

차제에 합신 총회는 한국교회 앞에 거듭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특히 합신 이대위가 개인의 의견에 휘둘려서 이단을 규명해 왔던 일들을 철저하게 청산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보다 상식적인 의견을 가진 많은 목회자들이 합신 교단에 있다. 아주 작은 몇 사람의 실수가 교단 전체의 이미지로 보이지 않도록 환골탈퇴해야 한다. 더 이상 그들이 공적인 자리나 개인적인 입장에서라도 이단을 연구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총회가 지도해야 한다.

 

신고자와 검사와 판사가 모두 이대위 임원이 하는 이대위의 악행은 근절되어야 한다.
상대방에게 정확한 자료도 제시하지 않고 ‘이단성’이라는 말을 하는 모함은 사과해야 한다.
잘못된 자료와 근거로 ‘이단 종합 선물세트’를 만들어 뒤집어씌운 참소는 회개해야 한다.
스스로 이단의 주장을 펼친 사실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해야 한다.
학력위조의 논란에 서 있는 인물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조사를 해야 한다.
개인의 의견에 휘둘리는 공(公)교단이 되지 않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본지 특별 취재팀>

 

경찰종합신문, http://pot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76, (2015-09-17)